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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재건에 동참하라


성벽 재건에 동참하라


느헤미야의 주도 하에 주변 이방인들의 방해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기 시작됩니다. 성벽은 52일 만에 재건되는데요, 느헤미야는 성벽을 길쭉한 모양으로 재건했습니다. 나중에 인구가 늘어나고 성이 확장되면서 예수님 시대에는 거의 사각형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습니다. 성벽 재건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된 느헤미야 3장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두 가지가 있는데요, 그 중 하나는 바로 ‘중수했다’는 단어입니다. 3장 안에만 총 39번이나 나옵니다. 아마 한국 사람 같으면, ‘빨리 빨리’가 가장 먼저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중수’가 가장 많이 나옵니다. ‘중수’는 “강하고, 견고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느헤미야가 52일 동안 성을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나 빨리, 성을 만드느냐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크게 만드냐에도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강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성경은 속도나 규모가 아니라, 중수하는데에 더 신경 쓰고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와 믿음의 공동체를 이뤄가면서,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얼마나 ‘크게’게 아니라, 어떻게 ‘강하고 견고하게’ 교회와 공동체를 ‘중수’하는데 더욱 집중하는 것이 중요함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여기 성벽을 재건하며 느헤미야 3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단어는 “그 다음은”입니다. 이것도 22번이나 나옵니다. 여기에 사람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나오는데, ‘그 다음은 누구, 그 다음은 누구, 그 다음은 누구...’ 하는 식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맡은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사할 때, 여러 사람이 역할을 골고루 분담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 나오는 건축자들 명단에 보면, 직업이 다양합니다. 대제사장, 레위인, 느디님 사람들, 금장색, 상고... 70명 이상의 사람들 이름이 나옵니다. 모든 사람이 한 부분씩 골고루 맡아서 성벽을 건축했습니다. 결코 느헤미야 혼자서 한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 혼자 일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일하는 것은 더 좋습니다. 그것이 성경적 원리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달란트 있는 분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동역자로 세워나가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내가 일하지 못할 경우에는, 일하는 분들에게 찾아가서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는 공동체가 함께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바울이 교회를 몸에 비유했듯이, 한 몸 되고, 서로 협력하고, 협동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일꾼들이 있는데요, 바로 ‘느디님 사람들’입니다. 느디님은 오직 역대상 9장 포로귀환민 명단과 에스라, 느헤이먀에만 등장합니다. 느디님은 ‘주어진 사람들’이란 뜻인데요, ‘성전 막일꾼들이라 보시면 됩니다. 민수기 31:30에 보면, 하나님이 전쟁 포로 중에 일부를 레위인에게 주는 제도를 만드셨는데요, 여호수아 9:27에서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 중 일부를 성막에서 나무를 패고 물긷는 자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느디님 사람들은 ‘전쟁포로 가운데 레위인들을 보조하여, 성전에서 허드렛일 하도록 주어진 사람들’인 셈입니다. 쉽게 말해, 성전에서 일하는 종입니다. 즉, 느디님은 이방인들로서, 종이었고, 최하층민입니다. 사실 이들은 굳이 포로에서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귀환민들과 동일하게 예루살렘 회복에 대한 비전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했고, 성전과 성벽 공사에 열심히 동참했습니다. 결국, 포로귀환 명단에 제사장과 레위인 다음으로 소개될 정도로 나름의 위치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이들이 ‘이방인’이란 것입니다. 그 당시 느헤미야는 이방인들과 협력해서 성벽을 세우는 것을 거부했고, 이방인들과의 결혼도 금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부로 수용되고, 공사에도 동참하고 있단 말입니까?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니라, ‘신앙의 여부’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겠다는 마음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이미 예루살렘 주변에 살고 있던 이방 민족들도 예루살렘의 부흥을 기대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한 켠에는 신앙의 회복보다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이기적인 자기 중심의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와 에스라 등에 의해 그 주도권을 빼앗기게 될 것 같으니 그토록 집요하게 성벽 공사를 방해하고 성벽 재건을 가로 막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똑 같은 이방인이었던 느디딤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기꺼이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의 회복을, 신앙의 부흥을 그들은 소망하며 이 일에 기꺼이 동참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헌신과 섬김의 자세인 줄 믿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어떠한 이득이 내게 주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헌신과 섬김의 자리에 설 수 있어야겠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오늘도 회복과 부흥의 역사를 맡겨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게 성벽 재건의 사명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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