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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삶


올라가는 삶


사도행전 16장의 기록에 의하면 바울과 실라가 2차 전도여행을 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바울에게 아시아에서 계속 선교하는 것을 막으시고는 유럽 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따라서 바울과 실라는 그들의 발걸음을 유럽 쪽으로 돌려 네압볼리를 거쳐 빌립보로 들어와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인도하셨고, 바울과 실라는 성령께 붙잡힌 사람들이었기에, 우리들 생각으로 하면 그들은 장차 유럽에서 엄청난 일을 해낼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시련을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었다는 이유로 무참히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그들을 인도하셨고, 성령께 붙들린 그들에게 어찌 이렇게 가혹한 일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따라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바울과 실라를 이곳까지 이끌어 놓으셨다면-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얼마든지 이런 핍박과 시련은 막아주실 수 있으신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핍박과 시련을 막아주시지 않으시고, 그렇게 무참하게 당하도록 버려두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핍박과 시련쯤은 막아주셔야 더욱 신나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그들이 불한당들에게 당하도록 하시는 것을 보면서, 당하는 저들이나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나 모두 하나님을 원망하기에 좋은 처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였으나 그들은 미끄러져 내려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도하며 찬송하였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올라가는 삶’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들의 입에서는 신음소리 대신에 기도가 나왔고, 원망과 불평 대신에 찬양이 나왔습니다. 그들의 기도와 찬송은 밤의 적막을 깨뜨릴 만큼, 죄수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당당하고 우렁찬 것이었다는 성경의 증거는 참으로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어찌 이럴 수 있는 것입니까? 바울과 실라도 우리와 똑 같은 인간입니다. 저들도 아프면 신음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힘들면 낙심할 수 있는 인간입니다. 그런 그들이 억울하게 고소를 당했습니다. 무고히 매를 맞았습니다. 습하고 냉한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게다가 고통이 더하게 하는 착고까지 채였습니다. 그런데도 신음 대신에 찬송이, 한숨과 원망 대신에 기도가 나왔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째서 이럴 수 있었을까요? 우리도 좀 배워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옛날 초대교회의 수많은 순교자들이 기도하며 부른 찬송이 전해져 오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오 주여! 나에게 이와 같은 영광을 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고난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교부 ‘익나티우스’가 순교하러 로마 원형 경기장 안으로 끌려갈 때 크리스찬들은 이를 알고는 예전에 하던 대로 미리 흰 옷을 입고 그를 위해 생명의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마지막 고별송을 부른 것이지요. 그 앞으로 익나티우스가 끌려가고 사람들이 눈물바다를 이룹니다. 그때 익나티우스는 이렇게 부탁을 합니다. “그대들은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내가 다시 놓이기를 위하여 기도하지 말고, 저 사자에게 찢겨 밥이 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해 달라 기도해 주시오.” 그리고는 전송의 손을 흔들며 최후의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나 익나티우스는 이제부터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시작한다.”라고. 이 얼마나 뜨거운 기도며, 이 얼마나 뜨거운 찬양이었습니까? 바울과 실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지하 감옥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신음 대신에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매 맞은 것이 복음을 전파하는데 도움이 되게 해 달라고, 쇠사슬에 매인 것이 빌립보 복음화를 위한 계기가 되게 해 달라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찬송하였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에게는 바울과 실라처럼 어떤 형편에서든지 기도하고 찬송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1-2) 우리 모두 이 권고를 받아 우리의 마음을 하늘로 향할 수 있기 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바울과 실라처럼 이세상의 모든 것을 믿음으로 감당하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도하며 찬송하는 삶, 올라가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때로는 지진을, 때로는 사슬이 풀리는 역사를, 때로는 옥문이 열리는 현대판 기적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입고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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