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일꾼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684
- 22-05-22 08:44
그리스도의 일꾼
어떤 한 사람이 주일 아침이 되자 아주 불평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저 오늘은 교회 가기 싫어요. 교회 가면 보가 싫은 사람도 많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너무 많으며, 아무리 열심히 섬겨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자 어머니가 아들을 타이르며 설득합니다. ‘아들아!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 보며 신앙 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니?’ 그러자 아들이 어머니에게 따지듯 이렇게 묻습니다. ‘도대체 제가 그래도 교회를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예요?’ 아들의 철딱서니 없는 이 질문에 어머니는 ‘아들아! 네가 그 교회 담임 목사이잖니!’ 그렇습니다. 힘들어도 목사는 목사의 자리를, 성도는 성도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견디고, 기다리는 모습이 성도의 참된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가리켜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라 표현합니다 (고전4:1). ‘일꾼’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레테스’는 과거 고대 시대에 배 아래쪽에서 노 젓는 노예를 뜻하는 말입니다. 교회의 지도자요, 사도였던 바울이 오히려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가 마치 노예와 같이 배를 저으며 교회를 움직여 나가는 모습, 수고와 헌신의 자리에서 교회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존경하고 높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모두에게 치욕적이라 할 수 있는 노예요 종의 자리로 한없이 내려가 그저 묵묵히 노를 젓는 그 위치,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의 많은 지도자들이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되면, 명령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려고만 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도 충분히 그러한 자격과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명령하고 판단하고 평가하기 이전에 가장 먼저 배 밑으로 내려가 노 젓는 일을 감당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노 젓는 일을 그만두고 이제는 좀 대접 좀 받아야겠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한 교회에서 자신의 노 젓는 사명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다 판단되면 또 다른 곳으로 가 그곳에서 또 다시 낮은 배 밑창으로 내려가 노 젓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칭송과 높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자신은 그리스도가 주인되신 배에서의 노 젓는 일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일에만 온통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배 밑바닥으로 내려가 묵묵히 노 젓는 일을 통해 배가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일꾼의 진정한 의미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시는지요? 이러한 노예들의 평균 생존 기간은 3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만큼 배 밑에서 노 젓는 일은 생명을 갉아먹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중노동의 일이었습니다. 또한 배가 침몰하는 일이 생기게 되더라도 노 젓는 노예들은 그 배와 함께 죽는 자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 세계에 있어서 이 일은 중죄인이나 가장 비천한 노예가 감당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며, 한 번 노 젓는 노예로 전락하면 일반적으로 죽기 이전까지는 그 일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각오로 그는 사명의 자리를 감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적어도 그는 이 일에 어떠한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바칠 각오를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스스로를 이와 같은 배 젓는 노예의 신분과 같은 처지가 되려 한 것일까요? 아니 왜 굳이 노예와 같은 일꾼이 되려 하였을까요? 바울에게는 지키고 전해야 할 ‘복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코 자신이 주인이 될 수 없고, 주인 노릇할 수 없는 자리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일꾼은 결코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스스로 높임 받고, 인정 받고, 칭찬 받는 자리가 아닙니다. 일꾼의 자리는 깊이 깊이 내려가는 자리입니다. 한없이 수고하고 애쓰는 자리입니다. 아무도 그의 공로를 인정하거나 알아주는 자리도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일꾼의 자리로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알아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에 영광으로, 축복으로, 상급으로 우리 손에 들려주실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바울과 같이 우리 모두도 그리스도의 일꾼이라 스스로 당당히 소개 할 수 있기 원하며,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충성되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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