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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부르심


지난 주간 저희 지방회에서 목사 시취가 있었습니다. 목사 시취는 다른 교단에서 치루는 목사고시와 비슷한 과정입니다. 시취 위원으로 선임되신 여러 목사님들이 돌아가며 구두로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목사 후보자 되시는 분이 하는 형식입니다. 물론 구두로만 진행하지는 않고요, 미리 12가지 주제와 각 주제당 3-6가지 세부 질문 등으로 답변서를 요청해서 제출하게 한 뒤 그를 토대로 질문을 합니다. 통상 40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제출하도록 하는데, 이번 시취를 보시는 목사님은 아주 성실히 답변서를 준비하셔서 그런지 6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답변서를 제출하셨습니다. 그 답변서 안에는 하나님에 관한 신론부터 시작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독론, 성령론 구원관, 성경관, 교회론, 목회 윤리 및 개인 영성, 부부 및 가정 생활 등등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시취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시취 받으시는 분의 구원에 대한 확신과 목회자로 부르신 소명입니다.


아니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분에게 구원에 대한 확신과 소명이 없을 거라 생각해서 그 두 가지 사항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냐고 되물어 보실 수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실제 구원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사역자의 길로 들어선 이들이 있습니다. 한때 열심으로 신앙 생활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사역자의 길로 들어선 분들이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기도 전에 감정적 변화를 경험한 분들이 이를 착각한 나머지 자신의 구원을 제대로 점검 받지 못한 채 사역자의 자리에 서는 모습을 아주 가끔은 목격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구원 받기 전의 모습과 구원 받은 후의 모습이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살아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분명 구원받았다고 하는데 이 사람이 진짜 구원 받았는지 헷갈리게 행동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리고 많은 성도들 앞에서는 구원 받은 자처럼 거룩하고 신실한 것처럼 행동을 하는데, (실제 사역자로 앞에서 인도하는 모습만 보면, 모두가 다 구원받은 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불 꺼진 무대 뒤편에서의 실제 모습은 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소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목회자로 부르셨다는 확실한 소명 없이 사역자의 길에 들어선 이들이 참 많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그래서 목사가 된 뒤 방황하다 사역자의 길을 버리고 떠나게 되는 일도 발생하게 됩니다. 소명보다는 생활의 방편으로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 이들의 경우 대부분 진정한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기 보다는 물질을 쫓아 더 나은 환경과 더 나은 자리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철새 정치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철새 목회자도 참 많습니다. 그래서 사실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물론 이런 행동을 함에는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명분도 하나님의 소명 앞에서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과 소명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를 죄에서 불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죄인인 우리를 의인으로 삼아 주심을 뜻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왜 죄인인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죄인이고 내가 어떤 죄의 삶 가운데 살고 있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면 결코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의 죄인된 존재를 발견해야 비로소 그 죄에서 나를 구원해 줄 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죄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나를 불러 내어 의인으로 삼아 주심이 구원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또한 소명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우리를 불러 당신의 일꾼으로 삼아 주심을 뜻합니다. 소명에 있어서 우리가 가장 크게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하나님이 나를 일꾼으로 세워 주셨다는 점을 크게 강조하려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소명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쓴 서신서의 대부분에서 이 사실을 가장 먼저 강조하여 설명합니다. 자신이 사도로 일을 하게 됨은 자신의 능력도 아니고, 자신의 배경도 아니며, 오로지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고전1:1)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고 누누이 밝히고 있습니다. 대부분 소명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고백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어떤 일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지를 증거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논하기 전에 ‘누가’, ‘어디 혹은 무엇으로부터’ 나를 불러내셨는지를 깨닫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래야 사도 바울처럼 끝까지 이 사명의 자리를 지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부르심으로 인해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구원으로의 부르심, 소명으로의 부르심으로 우리는 믿음의 한 공동체 안에서 주를 바라보며 서로를 섬기며 살아갑니다. 어디에서 우리를 부르셨는지, 누가 우리를 불러 이 자리에 세워 주셨는지를 날마다 확인하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흔들릴지 않는 소망을 품고 끝까지 믿음의 자리를 지키고 사랑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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