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따르는 길
- 작성자 : 웹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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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2-13 07:21
예수를 따르는 길
신앙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당연히 주를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 모여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며 또한 복음의 증거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의 예수를 따르는 모습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과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누가복음 9장 끝부분에 보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는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를 다 치르고 나서 주를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때 그 사람에게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 말씀하십니다. 유대교의 장례 풍습에는 장례가 2번에 걸쳐 진행이 됩니다. 첫 번째 장례는 사람이 막 죽은 뒤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최종 장례를 치르게 되는데, 약 1년 정도가 지난 뒤 두 번째 장례를 치릅니다. 이때에 비로소 모든 법적 절차가 다 마무리되어 부모의 유산 문제가 다 정리가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말씀은 당시의 장례 풍습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아직 재산 분할이나 유산의 문제가 다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니 그 문제가 다 정리되면 그때 가서 주를 따르겠다고 하는 자에게 무엇이 우선 순위인지를 가르치시고자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또 다른 이, ‘나로 내 가족과 작별하게 하소서, 그 이후에 주를 따르겠나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가족과 작별한다는 게 뭐 잘못입니까? 그러나 주님의 대답을 보면, 가족이 앞으로 먹고 살 문제를 다 준비한 뒤에 주를 따르겠다는 말입니다. 역시 우선 순위에 있어서 가족의 먹고 살 문제가 먼저인 셈입니다. 뭐,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이전에 하고 싶은, 마치고 싶은 여러 가지 변명이나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공부를 다 마친 이후에, 결혼을 한 이후에, 자식들이 다 장성한 이후에,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이후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다 정리된 이후에, 건강이 회복된 이후에 등등. 주님의 제자로 살겠다는 사람들은 지금도 넘쳐 나지만, 나름의 이유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 마디로 주님이 세워 주시는 제자로서 응답하여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자신의 원하는 방법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자 아닌 제자들이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엉뚱한 길로, 엉뚱한 짓거리 하는 제자들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제자들을 따로 세우시는 장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해서 따르겠다고 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따로 세운 자들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주님이 직접 세운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자기가 원해서 제자가 된 사람들은 꼭 사고를 치고야 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제자가 되어야 되는데 자신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제자가 된 사람은 결국에는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가득 차 주님의 제자가 아닌 자기 만족의 제자로 살게 되고야 맙니다. 우리는 나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주님의 제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주님의 제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제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 친히 부르셔서 세우신 제자로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끝까지 주님의 제자로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길은 주님이 부르셔서 세우심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또한 예수를 따르는 자로 살아가는 길은 주님께서 가시려는 곳을 앞서 가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가시려는 곳, 즉 주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종종 내가 가고 싶지 않으면 회피합니다. 안 가려 합니다. 도망가려 합니다. 마치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 앞에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야 만 요나처럼 우리는 자주, 종종,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슬쩍 가 버리고 맙니다. 주를 따라 살아가는 길은,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닌,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닌 주께서 원하시는 곳, 주님이 가셔야만 하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로마로 가고자 하는 길을 에베소 교회 장도들이 막습니다. 이유는 가면 죽을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로마로 가는 배에 몸을 실은 이유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고, 주께서 가시고자 하신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를 따라 살아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편안하고 안전한 곳을 택할 것인가? 매 주일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만나면 마음이 불편한 이 사람을 만나러 나갈 것인가 아니면 오늘도 모른척하고 지나칠 것인가? 순간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합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길, 내 마음이 편한 곳을 늘 택하고야 맙니다. 그러고서는 여전히 주님의 제자라고 우기며 삽니다. 그러나 내가 있고 싶은 곳,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향하여 즐겨 가게 된다면,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제자가 아닌 무늬만 제자로 응답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친히 가시려는 곳에 서십시오. 주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십시오. 내 생각, 내 마음이 머무는 곳을 보지 마시고, 주님의 마음, 주님의 눈길이 머무는 곳, 주님의 손길이 향하는 곳을 향해 오늘도 응답하여 나아가는 주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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