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바른 목적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613
- 21-11-21 08:45
신앙의 바른 목적
엘리바스를 비롯한 세 친구와 욥이 갈등하는 가장 큰 원인은 욥의 고난이 무엇에서 기인한 것인가에 대한 견해차 때문입니다. 욥은 자기의 고난이 죄와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친구들은 고난은 무조건 죄의 결과라고 규정하고 욥을 죄인으로 단정함으로써 그들 사이에서는 갈등이 형성되게 된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인과응보의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그래서 욥이 당하는 고난도 그와 같은 논리로 이해하려 한 것입니다. 물론 인과응보의 원칙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가장 일반적인 법칙이기는 하나 유일한 법칙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욥의 친구들은 이 사실을 간과함으로써 욥과의 논쟁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바스의 문제는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인과론적으로만 이해한 결과 그의 신앙은 하나님께 집중된 신앙이 아니라 그를 통해 주어지는 세상적 축복과 혜택에 더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욥기서 22장에서 엘리바스는 욥에게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22:21)고 충고합니다. 한 마디로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하면 이런 축복을 받을 것이고, 저렇게 하면 저런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극히 저급한 신앙적 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즉 엘리바스의 신앙은 지극히 기복적인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면’의 낮은 신앙에 머물러 있는 엘리바스를 비롯한 욥의 친구들의 모습을 우리는 욥과 논쟁을 벌이는 곳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엘리바스나 욥의 친구들의 신앙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욥의 신앙을 칭찬하셨을 때 사단이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라고 이의를 제기하였던 이유를 알 만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조건을 달아 신앙 생활을 하려 합니다. 조건 없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조건이 전제된 기복적인 신앙에 머무르게 되면 하나님을 자신의 욕심대로 이용하려는 잘못에 빠지게 됩니다. 즉 하나님을 마땅히 경외해야 할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탐욕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이는 오늘날 현대 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현주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소위 밀레니멈 세대를 지나면서 현대 교회 성도들은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 자체보다는 하나님을 신앙함으로 얻어질 축복과 형통엔 더 말은 관심을 가져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엘리바스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과 화목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복을 받기 위함이요, 하나님께로 돌아가 불의를 버리는 것도 다시 흥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탐욕을 이루는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러한 목적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야말로 불경죄를 짓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복을 누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복이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이 되어서는 결단코 안됩니다.
복을 목적으로 삼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할 순간에 신앙을 버립니다. 고난이 오면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욥에게도 그러한 일면이 전혀 없지 않았습니다. 그도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미쳤다'라고 고백함으로써 자신에게 기복적인 일면이 있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의 신앙은 기복적인 데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있어 인생의 복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그 모든 행위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정도의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비록 자기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기는 하였지만 하나님을 부인하는 데로는 가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할 것임을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
부디 여러분의 신앙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의 낮은 신앙에서 벗어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높은 신앙으로 성숙해져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어떤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그 분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도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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