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말씀

목회서신

강권함을 들어야


강권함을 들어야

 

누가복음 14장 15-24절에는 잔치에 초대받았으나 사양한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밭을 사서 못 가고, 또 한 사람은 소를 사서 그것들을 시험하느라 못 가고, 또 한 사람은 장가들어 못 간다고 합니다. 잔치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한 가지는 같습니다. 주인이 베푸는 잔치가 그들의 우선순위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 것을 우선시 했습니다. 한 마디로 주인의 초청보다 내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입니다.

 

밭을 산 사람이 보러 간 밭은 오늘 새로 산 밭이 아니라 이미 사놓은 밭입니다. 그것을 꼭 잔칫날에 보지 않아도 되는데, 밭을 보러 나간다고 합니다. 소 다섯 겨리는 소 열 마리이고, 꼭 그날이 아니어도 되는데 소를 시험하러 간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새 차를 뽑았으니 오늘, 지금 시승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가든 사람 역시 그날이 결혼식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결혼한 뒤 가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가정을 핑계로 잔치에 참여하지 않은 것입니다.

 

모두가 현실적으로 더 이익이 나는 곳에 관심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받을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이익이 되는 것, 밭도 살펴보고, 소도 시험해보고, 장가가서 내 삶도 챙겨야 하니 잔치에는 못 가겠다고 거절한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우선순위가 뒤바뀐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그 밭, 그 소, 그 가정이 누구의 것인가요? 누가 주신 것인가요? 네, 바로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 ‘내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 밭, 내 소, 내 가정을 말하고, 정작 주인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자기 일, 자기 것에 우선순위를 둡니다.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자신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우선순위를 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 다리 저는 자는 하나님나라의 유업과 관계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자들이고, 예배에 들어오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4:21에 보면, 바로 그와 같은 자들이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잔치에 초대된 이들은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여긴 오만한 유대인들과 달리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리어 감사로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잔치 자리에 자리가 남아 있자 주인은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2-24)고 명합니다.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갔다는 것, 마을 사람들 말고도 밖에 있는 사람을 데려왔다는 것은 그들이 이방인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한 마디로 천국 잔치에 들어올 수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강권(強勸)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강권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은혜가 무엇인고 하면, 바로 이런 강권함으로 인하여 그들이, 그리고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온 비결 중 하나는 제 곁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천사들이란 바로 나를 위해 강권해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힘들고 싫었는데 나를 강권하여 찬양의 자리로, 말씀의 자리로 데려가 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여러분의 천사들입니다. 천국에 들어오는 자의 특징은 그 강권함을 들은 자입니다. 그래서 강권함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중에 잔치에 온 사람들의 특징은 자격이 없든, 강권함을 들었든, 자기 것을 내려놓고 이 잔치에 마음을 두고 살아온 자들입니다. 

 

천국 잔치에 들어가는 것은 세상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그가 맹인이든, 절름발이든, 멀리 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이 잔치에 우선순위를 둔 자, 이 잔치에 마음이 없었는데 강권함을 들을 수 있는 자, 이 잔치를 향하여 삶의 방향을 둔 자들이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긋지긋하게 말을 듣지 않습니다. 강권해도 안 듣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크신 은혜와 기회를 베풀어주실 때 우리는 듣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신앙은 방향을 돌이키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 소리를 듣고 180도 방향을 돌이키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천국이 아무리 가까이 왔어도 돌이키지 않는다면 천국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돌이키려면 들을 귀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천국을 향한 시작은 강권함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기억하며 여러분의 심령의 귀를 활짝 여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