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기억의 함정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756
- 21-08-29 08:38
어제의 기억의 함정
창세기 39장에 나오는 요셉의 모습은 우리가 죄를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입니다. 요셉은 매일 유혹하는 상전을 향해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창39:9) 대답이 여기서 끝났으면 요셉은 끝내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여긴 아무도 없다. 보디발은 몇 주 후에 온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사람이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일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이 아닌 곳이 어디 있습니까? 죄는 유혹 때문에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나의 태도 때문에 짓는 것입니다. 죄를 선택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죄를 정당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타협도 절대 안 됩니다. 각별하게,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죄를 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다가오는 유혹에 매번 이길 수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유혹은 매번 더 강해집니다. 오늘의 유혹은 어제보다 강합니다. 보디발의 아내도 더욱 강한 유혹으로 요셉에게 다가갔습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창 39:10) 여기서 키워드는 ‘날마다’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한 번만 유혹한 게 아닙니다. 대단한 권력을 가진 주인의 아내가, 날마다, 더 강하게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요셉이 뿌리치기 쉬운 유혹을 견디고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날마다 자신을 찾아온 유혹보다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한 동행이 더 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날마다 자신을 찾아오는 달콤한 유혹보다 날마다 함께하는 하나님과의 동행이 더 가치가 높았다는 뜻입니다. 과거 구덩이 속에서 하나님을 붙잡았던 요셉에게는 하나님과의 동행이, 하나님과 함께함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악의 유혹이 아주 강하게 찾아와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면 절대로 오늘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늘의 은혜로, 오늘의 동행하심으로, 오늘의 함께하심으로 살지 않으면 오늘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제는 어제의 은혜가 있어서 이길 수 있었다면, 오늘의 유혹은 오늘의 은혜가 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제 이겼다고 오늘도 이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제 다시는 안 먹어도 될 것처럼 밥을 많이 먹어서 아무리 배가 불렀어도 오늘 식사 때가 되면 또다시 배가 고파지고 또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어제 은혜 받았어도 오늘은 오늘의 은혜를 또 받아야 합니다. 어제 영적인 양식을 먹었다고 오늘 괜찮으면, 그것이야말로 영적으로 병든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제의 기억으로 신앙생활 하면 안 됩니다. 오늘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어제의 기억에 만족하신다면 오늘의 죄의 유혹 앞에 속수무책으로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 어제의 기억에 만족하지 마시고 오늘의 은혜를 구하며 오늘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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