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우리 주여!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757
- 21-07-18 08:52
여호와 우리 주여!
다윗은 시편 8편을 통해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고백과 찬양을 드리곤 합니다. 목동으로서, 그리고 오랜 시간 광야 생활을 해 본 자로서 경험에서 우러러 나오는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것들을 통해, 그리고 주님이 베풀어 주신 것들을 통해 다윗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달았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자신을 생각하사, 자신을 돌보시려고 주신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사무엘로부터 사울 왕에 이어 다음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을 때에도 다윗은 들에서 양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가 왕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의 형제들과 그의 부모들마저도 말입니다. 양을 지키고 목동으로서 사는 삶이 하찮을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은 달랐습니다. 양을 지키고 목동으로서 최선을 다해 사는 삶 속에 하나님이 자신을 생각해 주심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이 자신을 돌보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사울 왕의 눈을 피해 광야로 들판으로 도망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야가 들판이 어찌 편안하고 행복하고 성공하고 형통한 삶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생각해 주심을, 자신을 돌보아 주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분명 배고픔 속에서, 쫓기는 불안함 속에, 마땅히 잠 잘 곳 없는 불편함 속에 살았어도 그는 여전히 그 불합리한 환경 속에서, 그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돌보심과 자신을 생각해 주심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자연 환경을 통해, 자신의 주위의 환경을 통해 여전히 하나님의 돌보심과 하나님의 생각해 주심을 깨들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귀한 은혜는 없습니다.
특별히 “주의 손가락”이라는 다윗의 고백이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는 항상 주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내 손이 가리키는 방향, 내 손이 가리키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그는 언제나 나아갔습니다. 그곳이 광야여도, 그곳이 왕궁이어도, 그는 늘 하나님 손 끝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의 손가락”은 다윗의 시선의 끝자락과 같습니다. 다윗은 왕이라는 자리를 바라보지 않았고, 다윗은 사람들의 환호와 함성 속 높임 받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주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주님의 손가락이 멈춰 선 곳을 향해 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환영 속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을 하셨지만,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 메시야’로 외치며 주님을 맞이하였지만, 그들의 환영과 함성과는 상관없이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손 끝이 가리키는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걸어 가셨고 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의 손가락을 바라보는 삶이 참 귀하고 중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이 주의 손가락 끝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생각해 주심과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 살아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다윗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하며 살았습니다. 분명 다윗은 자신의 머리 위에 씌여진 이 왕관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왕으로 산다는 것, 사울 왕은 자신이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기에 자신이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리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넘어 월권까지 행사하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이어 왕 위에 오른 이들 중 몇 몇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다윗 왕의 길로 행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왕들은 하나님 위에 서서 왕권을 행사한 이들이었습니다. 특히 북이스라엘 왕들은 하나같이 그리 행하였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얼마든지 하나님과 같은 권세로 세상을,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하나님 보다 못한 존재로 제한하여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왕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존귀한 존재로 나타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의해 존귀하게 되었고 영화롭게 된 자신임을 인식하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왕이 된 뒤에도 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대로 살아가려 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망각하면 우리는 늘 바벨탑을 쌓고 스스로 높아지려 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하고, 아니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처럼 착각하며 삽니다.
다윗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에게 이 영광스러운 관을, 존귀한 관을 씌워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에 집중합니다. 바로 주님 손으로 만든 것을 다스리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왕관을 씌우심은 자신의 명예나 권세나 부를 높이고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맡아 감당하기 위함이라는 사명을 그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번 높은 곳에 오르면 내려가려 하지 않을 뿐더러 그 높은 곳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를 누리고, 부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부리려는 것이 인간의 습성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높은 왕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이 감당할 일이다 그리 알고 고백을 합니다. 그것이 양이든, 그것이 백성이든,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일이기에 자신은 그저 충성되이 이것을 사명으로 알고 감당하면 될 것이다 여긴 것입니다. ‘나는 왕이다’가 아니라 ‘나는 왕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다’ 라는 의식 속에 살았던 다윗처럼 오늘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도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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