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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는 자와 도망가는 자


피하는 자와 도망가는 자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시11:1)

 

다윗의 젊은 시절을 생각해 보면, 그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뒤로 대접받고 존중 받는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늘 사울 왕에게 쫓기는 어려움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광야로 내몰린 다윗에게 사람들은 ‘새 같이 도망가라’(시11:1) 권면하곤 했습니다. 어디선가 사울 왕의 화살이 언제든 다윗을 쏠 준비를 하고 늘 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새가 아무리 빨라도 순식간에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마치 자신의 삶의 터가 무너진 것과 같다고 탄식하며 고백(시11:3)을 합니다. 어디에 있든 안전을 보장받을 만한 곳이 자신에게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터전이 무너져 버리면 어디론가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피했습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다윗의 친구들을 비롯하여 그의 주변 사람들은 ‘도망가라’고 권유합니다. ‘피하다’와 ‘도망가다’는 같은 말 같지만, 엄밀하게 따져서 같은 말이 아닙니다.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흥망이 갈리게 됩니다. ‘여호와’께 가면 피하는 길이지만 ‘산’으로 가면 도망가는 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다윗은 용사입니다. 그는 어린 목동일 때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워 이긴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사울 왕의 군대장이 되어 사울 왕을 위해 싸운 사람입니다. 광야에 피신해 있을 때도 그는 600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군사를 이끌고 다닌 사람입니다. 그런 용사 중의 용사인 그가 싸우지 않고 여호와께 피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신실한 자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지은 다른 시편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듯, 시편 11편의 히브리어 원문의 시작은 ‘여호와께’로 시작을 합니다. 다윗은 의도적으로 ‘여호와께’ 피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피할 곳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산’과 같은 장소는 우상의 산당이 있는 곳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안 게신 곳을 의미합니다. 그곳에 가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산으로 도망가는 것은 다윗에게 있어서 피하는 길이 아니라 도망가는 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 왕의 눈과 손길을 피할 먼 곳, 산이 아니라 오히려 사울 왕의 손바닥 안이라 할지라도 여호와께 피하는 길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안전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얻게 되는 참된 보호만이 진정으로 이 위기의 상황에서 살 길임을 그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려움이 찾아올 때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먼저 찾는 것은 곧 도망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인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싸울 수 있어도 싸우지 말고 하나님께로 피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안전을 보장해 주는 곳이 넘쳐난다 해도 고집스럽게 하나님께로 피해야 합니다. 물론 그 순간, ‘고생 끝, 행복 시작’과 같은 우리가 꿈꾸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과 같은 신앙의 고집스러움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능력 안에 사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생명을 얻어 누리는 영원한 기쁨 속에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피할 길과 도망갈 길이 여러분 앞에 놓이게 되는 인생의 어려움의 순간이 찾아올 때, 주저하지 마시고 여호와께로 피하는 길을 택하여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우리의 인생을 통촉하시고 우리의 걸음 걸음을 감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돌보심이 여러분의 삶 속에 함께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께 피한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시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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