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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찾아야 할 것


광야에서 찾아야 할 것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유다 광야로 도망을 가야만 했습니다. 광야는 말 그대로 물이 없고 황폐한 곳,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누구나 다 광야로 나가게 되면 고통을 느낍니다. 이것은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실상 물이 없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이 황폐해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로 인해, 그 아들의 반역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왕의 신분에서 도망자 신세가 된 자신의 처지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만나면 자신의 처지에 비관하기에 급급합니다. 다우시도 충분히 그럴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비관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1)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이 당한 처지를 통해 하나님을 찾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물이 없음으로 인해, 목마름으로 인해 충분히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원망할 수 있지만 믿음의 사람이라면 하나님 없는 인생이 얼마나 비참하고 불행한 인생인지를 깨닫고 더욱 더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인생으로 변화되어 가야 합니다. 다윗은 그 황폐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사모하고 갈망했기에 그는 그 환경을 이기는 능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광야에 들어서면 우리 육신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의 경우 우리 육신에 물의 중요함과 같이 우리 영혼에 또한 하나님이 얼마나 중한지를 깨닫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광야는 아무 것도 없는 빈 들판과도 같지만, 실상 그 빈 들판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만날 수 있는지를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다윗은 이 광야에서 정작 자신에게 무엇이 없는지, 무엇이 소중한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광야로 나온 순간,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시63:1) 히브리어 원문에는 “엘로힘”이라 적혀 있습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을 그는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처지가 비록 황폐함 그 자체여도, 도망자 신세처럼 망한 자 같아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하나님을 ‘엘로힘’,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변함없이 여전함을 그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가 불행해 지면, 망한 자의 삶을 살게 되면, 모두가 다 자기 곁을 떠나버리고 버려진 인생이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내가 그토록 절실하게 간절하게 하나님을 믿었는데, 도대체 하나님은 내게 어떤 분이신가? 내가 믿는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분인 게 맞나?’ 의심은 끝도 없이 밀려 듭니다. 광야로 밀려 밀려 나가게 되면, 우리는 이와 같아집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광야에서, 그렇게 밀려 도망간 자리에서, 모두가 다 버린 자신의 처지 속에서 여전히 하나님을 전능하신 나의 하나님, ‘엘로힘’이라 부릅니다. 자신이 처한 황폐함의 광야에서 내가 믿는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믿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다윗은 여전히 변함없는 이 믿음으로 광야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광야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자리이고, 광야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리이며,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같은 광야에 서 있었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보다는, 하나님을 만나려 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 결과, 40년 이라는 시간을 그 광에 더 머물러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같은 광야로 나아갔음에도 그는 그 광야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바로 광야에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물이 아니라, 음식이 아니라, 강한 햇빛과 매서운 바람을 막아주는 가림막이 아니라, 방패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계셔야 함을 그는 제대로 발견했기에, 그는 그 황폐하고 황량한 광야 한 가운데 서서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걸어가시는 길이 비록 광야 같을지라도, 여러분의 심령 안에, 그리고 여러분의 입술 속에 이와 동일한 고백이 넘쳐 나시기를, 그리하여 그 광야를 넉넉히 이기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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