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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침묵은 거절이 아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거절이 아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을 때 한 가나안 여자가 예수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 세계 중에서도 가장 더럽게 여기며 배척하는 곳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5장에 이 여인을 가나안 여인이라고 까지 밝히고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나안 사람은 적이요 멸절되어야 할 민족과도 같이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그런 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악조건과 상황 속에 처한 여인이, 자신에게는 비록 예수님께 은혜를 받을 만한 어떠한 자격도 없지만 오직 자비로운 마음으로 자신을 가엽게 여겨서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간절한 호소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나안 여인의 호소는 성도의 믿음 생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즉 믿음 생활이란 도저히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처지에 있었던 가나안 여인이 그런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절하게 외쳤던 것처럼 아무런 자격도 공로도 없는 죄인된 자로서 하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하는 삶이 바로 성도의 믿음 생활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생활이란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세리가 감히 하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고 가슴만 치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호소하였던 것처럼 (눅18:13),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저주까지 한 베드로가 닭 울음 소리에 통곡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바랐던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삶을 사는 것이 성도들의 믿음 생활의 본질인 것입니다. 사실 죄악된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회개함으로 죄에서 돌이킬지라도 또다시 죄를 짓고야 마는 그런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우리는 가슴을 치며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시길 하나님께 호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 주실 것을 호소하는 믿음 생활을 계속할 때 우리 주님께서 가시던 길을 멈춰 서시고 이 여인을 만나 주셨던 것처럼, 그리고 이 여인의 간절한 소망, 자신의 귀신들린 딸을 결국에는 고쳐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간구와 기도에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응답 받는 과정을 보니, 참 마음이 답답하고 편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에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간절한 외침에 대하여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은 무정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가나안 여인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나안 여인의 호소에 응답지 않으신 것은 주님이 무정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가나안 여인을 무시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는 다만 주님께서 그녀의 믿음을 시험하심으로써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녀를 지켜 보고 있는 제자들과 무리들로 하여금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교훈을 얻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기도에 침묵하기도 하십니다. 우리를 무시하시거나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또 교훈하시기 위하여 침묵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창 12: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약속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백 세가 되기까지 자손을 허락지 않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침묵은 그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혹은 그를 실족하게 만들기 위한 침묵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당신의 확실한 능력을 보여주심으로써 그로 하여금 더욱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침묵의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그가 백 세가 되어 낳은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에도 전혀 망설이지 않고 그 명령에 순종할 만큼의 성숙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의 기도에 침묵하신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우리는 그 침묵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계속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잠잠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실 그 날에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부르짖는 가구에 침묵하신 것은 거절의 침묵이 아니라 그녀의 믿음을 온전히 세우기 위한 침묵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도 주님의 침묵을 거절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냉정한 반응에도 이 여인은 한발자국 더 나아가 주님께 엎드리고 또 간구하고, 매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의 침묵에 큰 낙심과 상심이 찾아 온다면, 이 여인의 믿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침묵을 거절이 아닌 응답으로 여긴 여인의 믿음이 결국 자신의 딸을 고침 받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며 하나님의 침묵 앞에 절망이 아닌 응답의 소망을 품고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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