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로 기준 삼은 교회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896
- 23-10-15 08:32
예수로 기준 삼은 교회
강대형 목사님이 쓰신 ‘파이터: 복음을 위해 싸우는 자’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사단은 거듭난 자를 함부로 공격할 수 없습니다. 거듭난 자들에게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할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는 사단을 제압하고도 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항상 거짓말과 속임수를 가지고 공격합니다. 기회를 엿보아 환경과 주변 사람을 통해 그의 약점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성도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뜨릴 수 있다면 모든 자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사단이 제일 두려워하는 상대는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시험 가운데 성령충만한 자리를 굳게 견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성령충만을 잃는 것일까요? 바로 작은 타협 때문입니다. 아주 작은 타협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 틈새를 통해 아주 조금씩 유혹을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한 자에게 사단이 제일 많이 하는 유혹이 ‘꼭 그 정도까지 믿을 필요 있어?’라는 말입니다. 맞는 말 같습니다. ‘꼭 나만 이래야 하나?’ 싶습니다. 너무 과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살지 않는 교인들도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견지했던 자리에서 벗어나 남들이 하는 것을 허용하게 되면, 바로 그 순간 하나님과 관계가 막히고 누렸던 은혜를 잃어버리고야 맙니다. 그리고 점점 더 죄의 길로 가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잃으면 끝입니다. 우리의 기준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남들이 어떻게 살든지 내 기준은 오직 주님이어야 합니다. 힘들더라도 오직 주님만을 붙들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빛이 임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우리는 그 당시의 성전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 당시에 세워졌던 성전은 하나님만을 예배하기 위한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각종 우상을 숭배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바로 솔로몬의 작은 타협으로 말미암은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성전을 떠나셨고, 성전 안의 하나님의 임재는 더 이상 바라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후 재건된 스룹바벨의 성전이나 후에 헤롯 대왕에 의해 웅장하게 증축된 성전이라 할지라도 그 겉모양만 화려해졌을 뿐 진정한 성전의 의미와 역할은 오히려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만인이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굴혈로’로 전락해 버렸던 것입니다(눅19:46).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전이라도 권력에 대한 욕심과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 차 버린 종교지도자들과 기득권층 사람들의 생각이 기준이 된 순간부터는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린 장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건을 사고 파는 장사치들과 이를 허가해 주고 이권을 챙기던 종교지도자들의 공공연한 거래로 인해 그렇게 성전 밖에서부터 시작된 작은 타협이 어느새 성전 안으로 깊숙이 침투해 버렸고, 결국 강도의 소굴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명칭을 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날에 성전 안에서 예수님이 드신 채찍은 성전의 무너진 기준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었습니다. 성전을 거룩하게 하시고, 바로 그곳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참된 기준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잃으면 끝입니다. 우리의 기준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로 기준 삼은 교회만이 ‘강도의 굴혈’에서 벗어나 참된 성전의 모습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잃어버렸던 은혜를 다시 회복하여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온전한 성전의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 그 중심에 여러분 모두 함께 서 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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