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 놓음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1,016
- 23-09-17 08:39
강원도 황지 소재의 '예수원(Jesus Abbey)'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우리가 잘 아는 대천덕 신부님이 세운 신앙의 공동체입니다. 성공회 소속 토레이(한국 이름 대천덕) 신부님이 신앙의 실험장을 만들기 위해 겨우 몇 사람과 강원도의 오지 황지에 예수원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은 1965년이었다고 합니다. 그 해엔 고작 본관 건물 하나만을 건립할 수 있었습니다. 이듬해 봄이 다가옴과 동시에 다시 공사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깊은 산속까지 건축자재를 더 이상 지게로 져 나를 수는 없다고 판단한 신부님은, 모든 건축자재를 트럭으로 운반할 수 있게끔 먼저 도로를 닦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로 공사에 필요한 기계를 구입해야 했고, 또 도로가 지나가는 땅 주인에게 임차료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신부님은 길을 먼저 닦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판단했기에, 후원자들이 다른 목적으로 헌금한 돈을 전용해서라도 먼저 도로공사를 시작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부님과 함께 일하던 예수원 가족들은 건축자재를 자신들이 계속 지게로 져 나를지언정, 다른 목적의 헌금을 전용하면서까지 도로를 먼저 닦을 수는 없다며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들은 학교 근처에도 가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거나 변변한 경력조차 없는 무명의 존재들이었습니다. 더욱이 예수원의 지도자는 신부님 자신이었습니다. 프린스턴 신학교와 하버드 대학을 나온 신부님 입장에선 그들의 반대를, 자신의 권위와 직책으로 얼마든지 가볍게 눌러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그들이 자신보다 반드시 못할 것이라는 자기 편견을 내려 놓았습니다. 변변한 학력이나 경력도 없는 그들의 반대에 귀를 기울인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신부님은 성령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희가 이 젊은이들과 함께 살려면,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생각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들은 한국 사람들이고, 이 상황에 대해 너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토레이 신부님은 도로를 내겠다는 소중한 소망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원을 세우는 우리의 목적이 좋은 도로와 큰 건물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자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가 되어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게 포기하고 내려놓고, 예전처럼 지게로 묵묵히 자재들을 운반하며 지내던 어느 날, 한 광업회사가 기계와 트럭을 가지고 와서, 예수원 앞을 지나는 도로를 만들고 산꼭대기까지 길을 냈다고 합니다! 숲 속에 있는 나무를 베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작업을 끝낸 후 예수원에게 그 길을 무상으로 주었다고 합니다. 토레이 신부님은 학력이나 경력도 변변찮던 예수원 가족들의 반대 덕분에, 다른 목적의 헌금을 전용하려던 실수를 범치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이후부터 예수원 가족들은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하나된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내려 놓을 때 성령 하나님께서 상대를 통해 더 오묘하게 역사하심을, 자신보다 더 작은 사람을 통해 성령 하나님께서 더 크게 역사하심을 그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함께 믿음의 공동체를 섬길 때 우리도 이와 같은 실수를 범하기 쉽습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그 안에서 결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하나된 공동체를 이루기 원하신다면, 이제는 내가 굳게 잡고 있던 것들, 그것이 편견이든, 지식이든, 물질이든, 사람이든 내가 굳게 붙잡고 있는 것들을 이제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복음을 가로 막는 장벽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나 되는 교회는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을 먼저 내려 놓을 때 가능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는 교회는 내 생각, 내 주관, 내 뜻을 먼저 내려 놓을 때 가능합니다. 그렇게 내 손에 붙잡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 놓을 때 우리는 주님 명령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감당하는 교회를 함께 세워나가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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