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말씀

목회서신

강건해 지십시오(2)


강건해 지십시오(2)


다메섹 도상에서 빛이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울은 아나니아의 안수로 눈에서 비늘들이 벗겨지고, 다시 보게 되고, 침례까지 받은 뒤 음식을 먹고 강건해졌음을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행9:19). 이때 일반적으로 '강건해지다'라는 의미로 당시 사용되던 헬라어로 '휘기아이노', '크라타이오오', '엔뒤나모오'와 같은 동사가 있는데도, 사울이 음식을 먹고 강건해졌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저자 누가는 전혀 다른 동사인 '에니스퀴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를 직역하면 '힘 안에 거하다'라는 말입니다. 이 동사는 사도행전 9장을 제외하고는, 신약성경에서 단 한 번 사용되었습니다. 그 단 한번 사용된 곳이 바로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목전에 임박한 당신의 죽음을 내다보시며, 땀에 피가 맺히기까지 처절하게 기도하실 때였습니다. 그때 일을 누가복음은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눅22:43)라고 적고 있습니다. 최후의 기도를 드리시는 예수님께 하나님의 천사가 내려와 '힘을 더했다'는 뜻의 동사가 바로 '에니스퀴오'입니다. 예수님께서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힘 속에 거하시도록 천사가 도왔다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힘을 힘입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만 사용되었던 이 단어가, 사울이 주님을 만난 뒤 변화 받고 강건해졌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자기 속에 주어진 참 생명을 위해 먹고 마시게 된 사울은 더 이상 자신의 힘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힘을 힘입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사울이 이 후에 육체적으로 건강을 누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날 이후로 사울은 평생 지병에 시달렸습니다. 그 지병이 정확하게 무슨 병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떤 이는 다메섹에서 시력을 상실할 때의 충격으로 인한 안질이라고 하고, 혹은 간질병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병명이 무엇이든 간에 사울이 자신의 지병을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한 것처럼, 사울은 그 지병으로 인해 일평생 말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몸 속에 가시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의 괴로움과 고통을 어찌 상상인들 할 수 있겠습니까? 이 후의 사울의 육체는 그처럼 병약했지만, 그러나 그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힘을 힘입어, 이 세상 어떤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가 꿈에서조차 상상치도 못할 영원히 가치 있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예전의 사울은 자기 육체가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시면서 오직 자신의 힘을 믿고 살았습니다. 대단히 박력 있고 의지에 찬 멋진 젊은이처럼 보였지만, 그때의 사울은 실은 생명과는 무관한 죽음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침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이후에는 온갖 핍박 속에서 그는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육체의 가시인 지병으로 인해 고통까지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사울의 몰골이 예수 믿기 이전만 못했을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참 생명을 위해 먹고 마시면서 하나님의 힘을 힘입어 살던 사울은,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한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이 같은 예를 우리는 성경 속에서 수없이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이집트 왕궁에서 자신의 육체만을 위하여 먹고, 자기 힘만을 의지하던 젊은 모세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이집트 병사를 쳐 죽인 죽음의 도구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의 양치기 노인으로 전락했을망정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살 때, 그는 위대한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리고의 라합이 자기 육체만을 위해 먹고, 자기 미모만을 믿었을 때, 그녀는 천한 기생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참 생명을 품고 위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며 산 결과,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예수님의 족보에 올리는 존귀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삼손이 자신의 정욕을 위해 먹고, 자신의 힘을 우상으로 섬겼을 때, 그는 적군에게 생포되어 두 눈이 뽑힌 채 짐승 같은 노예와 노리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참 생명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힘을 간구했을 때, 그는 여전히 눈멀고 적군의 포로인 상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가 되었습니다. 자기 힘만 믿고 병사를 쳐 죽이는 모세의 얼굴과 하나님의 힘을 힘입어 출애굽의 대역사를 이루는 모세의 얼굴이 같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음탕한 기생 라합의 얼굴과, 하나님의 딸이 되고 난 이후의 그녀의 얼굴이 같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정욕에 눈이 멀어 들릴라에게 빠진 삼손의 얼굴과 비록 두 눈이 빠졌을망정 하나님의 힘을 겸손하게 구하는 삼손의 얼굴이 같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자기 육체가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시면서도 진리의 대적으로 살던 사울의 얼굴과 비록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더욱이 지병으로 인해 초췌한 몰골이면서도 사도로 살아가는 그의 얼굴은 분명 달랐음을 우리는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도 더 이상 단지 죽기 위해 먹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시고, 주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참생명을 위해 먹고 마시며, 오직 하나님의 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강건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고전 10:31) 강건한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댓글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