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해 지십시오(1)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1,065
- 23-08-20 12:23
강건해 지십시오(1)
다메섹 도상에서 빛이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울은 시력만 상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이후 사흘 동안 식음마저 전폐해야만 했습니다. 바로 그 상황 속에서 아나니아의 안수로 눈에서 비늘들이 벗겨지고, 다시 보게 되고, 침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사울은 다메섹의 각 회당을 찾아 다니며 예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했던 사울이 침례 받은 직후, 각 회당을 찾아 나서기 전, 음식을 먹고 기력을 되찾았을 것임은 삼척동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행9:19)라고 적으며 사울이 음식을 먹고 강건해졌음을 굳이 밝히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역사가는 역사를 기술할 때, 무엇을 기술할 것인가를 고려하기 전에 무엇을 제외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고 합니다. 매일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에서 역사적 의미나 가치가 없는 것들을 먼저 추려 낸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그러므로 역사로 기술된 모든 사건 속에는 반드시 중요한 의미와 교훈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성경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인간에 대한 구원을 완성하시기까지, 그 장구한 세월 동안 이 세상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모든 일들에 대한 기록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된 말씀과 사건만을 추려 낸 구원의 역사책입니다. 따라서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아침에 일어나 이 닦고 세수하고 식사하셨다는 식의 무의미한 내용이 없는 반면에,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일단 성경 속에 기록된 사건이나 표현 속엔 절대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울이 음식을 먹고 강건하여졌다'는 말씀 역시 불필요하게 삽입된 무의미한 내용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절대적 의미와 교훈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행9:19) 이 짧은 문장은 두 개의 동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먹다'와 '강건해지다'라는 동사입니다. 중요한 것은 헬라어 원문에 기록되어 있는 이 두 동사는, 일상의 대화 속에서는 그런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 단어라는 사실입니다. 신약성경에서 통용되고 있는 '먹다'라는 동사는 헬라어로 '에스디오' 혹은 '화고'입니다. 마른 빵과 같이 굳은 음식을 아작아작 씹어 먹는 것은 '트로고'라고 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먹을 경우에는 '쉬네스디오'란 동사가 사용됩니다. 이처럼 헬라어에는 '먹다'라는 동사가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는데도, 여기에서 사용된 단어는 그것들과는 전혀 동떨어진 동사 '람바노'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본래 '취하다' 영어로는 ‘take’라는 의미로서, 이것이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성경에서 여기 사울의 경우가 유일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동사 속에는 '생명을 취하다'라는 특이한 의미가 깃들어 있는데, 이때의 생명은 참생명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알고 나면, 사울이 음식을 먹었다는 이 말씀의 메시지는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 말씀 이전에도 사울은 하루 세끼씩 어김없이 음식을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은 오직 육체만을 위해 먹었습니다. 매 끼니마다 산해진미로 육체를 채운다 한들 육체는 반드시 죽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육체만을 위하여 먹는다는 것은 긴 안목에서 보면, 결국 죽기 위해 먹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한평생 수고하고 애쓰면서 단지 죽기 위해 먹는다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그러나 눈에서 비늘들이 벗겨지고, 영안이 열리고, 침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울은, 이제 주님께서 주신 참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위해 음식을 먹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되고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전에 육체만을 위해 먹던 사울의 육체가 단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욕망의 몸짓에 불과했다면, 이제 사울의 육체는 영원한 생명을 담고 있는 생명의 그릇, 생명의 통로로 승화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고 변화되었다고, 참된 생명을 얻었노라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내 육체만을 위해 먹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예수를 믿고 변화 되었다면, 이제 영원한 생명, 참 생명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렇게 삶의 목적과 목표가 내 자신으로부터 주님께로 바뀌어야 합니다. 바로 여기 사울이 주님께로부터 택함 받은 그릇이 된 뒤로 바뀐 모습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강건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무엇보다 영원한 생명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강건한 여러분의 삶이 다 되시기를 축복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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