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늘이 벗겨져야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1,098
- 23-08-06 09:21
비늘이 벗겨져야
사울을 이제 주의 택한 사도로 부르신 하나님은 제자 아나니아를 통해 안수하게 하시고 사흘 동안 굳게 닫혀 있던 그의 눈을 활짝 열어 주십니다. 비로소 사울이 세상을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면서 사울은 온전한 시력이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사울 눈을 덮고 있던 비늘이었습니다. 우리말 '비늘'로 번역된 헬라어 '레피스'는 성경 중에서 본문에 딱 한 번 사용된 단어로서, 본래는 살갗에 생기는 비늘과 같은 껍질을 의미하지만, 물고기의 비늘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에는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동안 사울의 눈에는 물고기의 비늘 같은 것이 끼여 있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비늘이 아니라 복수의 비늘들이었습니다. 복수의 비늘들을 눈에 뒤집어쓰고서야 사울이 어찌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 눈으로야 만물의 실상을 꿰뚫어 볼 도리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동안 자신의 눈에 그와 같은 비늘들이 끼여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비늘들이 끼여 있는 자신의 눈에 투영되는 것은 만물의 실상이 아니라, 실상이 왜곡된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그때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실은 그 동안 헛된 인생을 산 어리석은 젊은이였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눈에 뒤집어쓰고 있던 비늘들이야말로 허망한 욕망의 비늘이요, 추하디 추한 이기심의 비늘이요, 그릇된 자기 편견의 비늘이요, 공동묘지에서 고작 한 줌의 흙으로 끝나버릴 자기라는 우상의 비늘이었기에, 그런 인간의 인생이 바로 세워질 도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의 안수와 동시에 자신의 눈에 그런 것이 끼여 있으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던 비늘들이 사울의 눈에서 벗어졌고, 그 순간부터 사울은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성경에 사용된 '다시 보다’라는 단어, 헬라어 '아나블레포'의 의미는 사흘 동안 상실했던 사울의 시력이 단순히 예전 상태로 회복된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접두사 '아나'와 '보다'라는 의미의 동사 '블레포'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그런데 접두사 '아나'는 '다시'라는 의미와 함께 '위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나블레포'는 '다시 보다'라는 의미와 함께 '위를 보다'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나니아의 안수로 눈에서 비늘들이 벗어짐과 동시에 사울의 시력이 회복되었음은 물론이요, 그때부터 사울은 비로소 위를 우러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비늘 벗은 눈으로 우러러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사도행전 9장 18-20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사울은 눈에서 비늘들이 벗겨지고서야 비로소 위를 향해, 그 동안 자신이 부정했던 예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심을 우러러 뵐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그분이 부활하여 살아 계실 뿐 아니라, 자신과 함께하고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심을 우러러 뵈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알기도 전부터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해 주신 사랑의 주님이심을 우러러 뵈었습니다.
눈에 비늘들을 뒤집어쓰고서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열심을 다해 헛된 인생을 살던 자신을 다메섹 도상에서 진리의 빛으로 꺾으시고, 되어져야 할 존재가 될 수 있게끔 사흘 동안 직가에서 금식하며 기도하게 하시고, 자신과 일면식도 없던 아나니아를 동원하시어 자신의 눈에 끼여 있던 비늘들을 벗겨 주시고, 더 이상 왜곡된 허상이 아니라 만물의 실상을 보게 하신 예수그리스도 그 성자 하나님을 똑똑히 우러러 뵈었습니다. 이처럼 사울의 눈에서 비늘들이 벗겨지고서야 비로소 위를 향해 주님을 우러러 뵈었다는 것은, 그의 눈에 비늘이 끼여 있을 때에는 그의 시선이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만 향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울은 유대교 내에서 누구보다도 입지가 탄탄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가장 어리석은 젊은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자기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그에게, 자신의 인생을 바르게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본문의 순간이야말로 사울의 인생에서 더없이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자기 만을 위해 살았던 사울, 자기의 야망과 욕망에 사로잡혀 살았던 사울, 자기 만의 테두리 안에 갇혀 살았던 사울, 그런 그의 눈의 비늘들이 벗겨지게 되니, 이제는 정말 하나님을 위해, 예수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살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이방인이 구원받아야 한다고 생각지 않던 그 시대에 담대히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며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을 이루며 살수 있었습니다.
주의 택한 그릇의 인생을 사는 자는 이처럼 눈에 비늘이 벗겨진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보좌 만을 바라보며,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눈에 가득 덮여 있는 비늘을 벗고 다시 보기를 원하시는 주님. 우리의 시선을 위로 향하여 오직 하나님, 오직 주님만 바라보기를 원하시는 주님. 주께서 택하신 그릇답게 여러분의 눈의 비늘이 오늘 이 순간 벗겨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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