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교회의 흔적 찾기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948
- 23-07-02 08:39
사도행전 교회의 흔적 찾기
흔히들 가장 이상적인 교회를 꼽으라면 초대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초대교회의 어떤 모습이냐를 물어보면, 그저 성령이 임한 교회, 그래서 믿는 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교회 정도로 꼽습니다. 부가적으로 모이기에 힘쓰고, 서로 떡을 떼고 나누는 모습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다 좋은 모습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초대교회를 알고자 한다면 좀 더 큰 틀에서, 그리고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셨을 때, 제자들은 성령님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위 천사의 방언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온 사람들이 각기 자신들의 모국어로 알아듣는 이해 가능한 언어였습니다. 그 기이한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 중에 제자들을 가리켜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들이 술 취한 것이 아니요, 자신들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셨음을 밝히면서 그의 첫 번째 설교를 행하였습니다. 베드로 설교의 핵심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께서 사망의 덫에서 풀어 살리시어 천지의 주재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모두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진리의 말씀 앞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그 가책에 반응하기 보다 대부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맙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인간의 양심은 진리에 전혀 무감각한, 죽은 양심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한 인간의 양심이 언제나 변함없이 싱싱하게 살아 있느냐, 혹은 시체처럼 썩어 가고 있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탓이요, 책임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이 마른 땅에 말발굽이 파이는 것처럼 크나큰 찔림을 받았을 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양심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지체 없이 물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난 삶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누구 탓도 아닌, 바로 자신들의 과오임을 바르게 인식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양심의 찔림을 받아 '어찌할꼬?' 통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과 동행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성령님과 동행하지 않고는 양심의 가책 없는 바른 삶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베드로가 제시한 방안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회개하라'는 헬라어 동사 '메타노에오’는 ‘길을 바꾸라' 혹은 '가던 길에서 돌아서라'는 뜻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문을 좀더 정확하게 옮기면, '죄사함을 얻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침례를 언급한 것은 침례의 형식이 아니라 본질에 대한 요구였습니다. 침례의 본질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여 죄의 노예이던 우리의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한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침례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고 한 것은, 죄의 길을 떠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을 살라는 촉구였습니다. 단순히 침례 의식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죄로 인한 사망의 길에서 돌아서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교회에는 말씀에 대한 찔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회개와 침례 즉, 주님과의 연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성령의 임재가 따랐습니다. 대부분 성령의 임재, 혹은 충만만을 초대교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보지만, 그 시작과 과정이 빠져 버린 상태에서는 결코 성령의 임재와 충만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찔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 찔림의 반응으로 회개의 삶, 주님과 연합하는 삶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 속에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에 혹 빠져버린 것은 없는지요? 성령의 충만을 바라지만 도무지 그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신앙의 결과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은 아닐런지요? 우리 신앙 생활의 시작과 과정도 다 중요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하고요, 그 말씀을 듣고 찔림과 회개의 과정이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주님과 연합하여 살아가는 모습이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 충만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가 우리의 구호가 되려면 적어도 하나님 말씀 앞에 진실함으로 설 수 있는 자세를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 붙잡고 주님과 연합하여 살아가는 신실한 모습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을 사모하며 다시금 말씀 앞에 서는, 그리고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의 회복된 성령 충만한 모습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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