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말씀

목회서신

Six to Seven


Six to Seven


‘Six to Seven’ 이것은 예배의 회복을 간절히 꿈꾸는 한국의 어느 교회의 사역 구호입니다. 이와 동일한 내용이 사무엘하 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모시고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그 영광스런 과정을 여섯 걸음마다 살진 소를 잡았다는 사실, 단 한 줄로 요약합니다(삼하 6:13). 하지만 이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도, 매끄럽지도, 우아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살아있는 생선 한 마리를 잡아 죽이는 것도 그야말로 피 튀기는 일인데 여섯 걸음마다 육중한 소를 잡아 죽이고 가죽을 벗기는 일은 얼마나 요란했을까요? 아마 제사장은 여섯 걸음마다 살진 소들과 씨름을 한판씩 벌였을 겁니다. 그때 소가 얼마나 반항했겠으며, 그 소를 잡아 죽일 때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겠는지요? 여기저기 피가 낭자한 가운데 각을 뜨고 태워서 제사를 지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어느 신학자는 오벧에돔에서 예루살렘까지 약 13마일(21킬로미터)의 길이 온통 피로 물들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 의식이 아무리 숭고하고 경건했을지라도 사방에서 피비린내와 땀내가 진동하는, 보기에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수고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최선이 보기에 꼭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이때 흘리는 땀과 눈물, 헌금과 수고와 손길은 우리의 마음이 표현된 구체적인 실물입니다. 그러니 결코 생략할 수 없고, 생략해선 안 됩니다. ‘여섯 걸음을 넘어 일곱 걸음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인간의 최선인 여섯 걸음마다 한 번씩 멈춰 서서 살진 소를 잡아 예배하던 다윗의 행렬이 그 다음 일곱 걸음 속에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완성을 기대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그와 같이 예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단 한 번의 예배를 위해 모든 수고와 헌신이 우리의 여섯 걸음일 것입니다. 토요일 이른 새벽부터 기도로 주일 예배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들, 예배 당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는 수고의 손길들, 주일 이른 아침부터 성가대로, 찬양팀으로, 점심 친교 준비 등으로 무수한 땀과 눈물과 한숨과 수고가 스며든 이 구체적인 섬김을 통해 우리는 다윗의 예배 정신을 온몸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어떻게 말로만 하겠는지요? 사랑이 어떻게 달콤하기만 한가요? 짠 내도 나고 쓴맛도 나는 게 사랑 아니겠는지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서는 모든 수고와 헌신의 과정이 오히려 여러분 모두에게 영광스러움의 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여러분의 ‘여섯 걸음’ 너머에 ‘일곱 걸음’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음을 꼭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신앙이 되기를,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계속해서 믿음의 유산으로 남겨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열망 하나로 이 모든 걸 감당했습니다. 주님의 임재 앞에 서고 싶어서, 주님의 임재를 이스라엘 중심부에 세우고 싶어서 가장 빠르게 움직여 여호와의 궤를 모셔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섯 걸음마다 멈춰 서서 이 수고로움의 과정을 다 치르며 한발 한발 조심스레 움직여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 시대에 무너진 다윗의 장막, 예배의 장막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길이라 믿습니다. 교회를 빠르게 부흥시켜 나가야 성공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가장 합당한 예배를 드릴 줄 아는 교회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교회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섯 걸음마다 멈춰서 제사를 드리고 또다시 일곱 번째 발걸음을 옮겨 나아갔던 다윗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장막이 인류 역사상 하나님이 가장 추억하시는 예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예배의 스케일이 엄청나서가 아닙니다. 예배에 쏟아 부었던 투자가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누구보다 다윗은 왕이 아닌 가장 낮은 종의 자세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서서, 여전히 친밀한 관계 속에 하나님 사랑함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만으로 자기 마음을 온전히 채우려 하였고,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 앞에 더욱 오래 머물러 있기를 소망했기에 그래서 그는 자신이 드릴 수 있는 최선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예배는 어떠하신지요? 최선을 다해 여섯 걸음 걸은 뒤 멈춰 서서 예배 드리고 다시금 일곱째 걸음을 옮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살아가고 계신지요? 예배 드리기에 앞서 여러분의 여섯 걸음,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괜찮으신지요? ‘여섯 걸음을 넘어 일곱 걸음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아니 특심으로 예배하는 다윗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오늘의 모습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댓글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