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말씀

목회서신

하나님께 성실하면 충분합니다


하나님께 성실하면 충분합니다


세상에는 약 3만 가지가 넘는 직업이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직업은 ‘occupation’ 이란 단어를 씁니다. 그리고 전문적인 직업을 나타낼 때 ‘profess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본래 ‘profession’이란 단어는 세 가지 직업에만 쓰이던 말입니다. 법률가와 의사, 그리고 성직자에게만 사용하던 말입니다. 특별히 이 세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서 존경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변호사는 내 인권과 재산을 보호하고 맡아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존경해야 하고, 의사는 내 건강을 맡아 주고 내 생명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역시 존경해야 하고 그리고 성직자인 목사는 내 영혼을 맡아 주는 사람입니다. 영혼을 위해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존경해야 합니다.


법률가나 의사, 성직자라는 세 가지의 직업이 다 중요합니다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셋 다 위험한 직업입니다. 언제 위험해지느냐 하면 이 셋이 돈을 벌자고 덤비면 문제가 됩니다. 만약에 의사가 병 고칠 생각보다 돈을 벌자는 생각을 먼저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환자를 볼 때 "저 사람은 여기만 잘 고쳐주면 좀 더 오래 질 높은 삶을 살겠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데 "저 사람을 수술대에 올려 놓으면 돈이 얼마 나오겠구나." 이 생각부터 한다면 큰일 아닙니까! 어느 의사 부부가 싸움을 하는데 부인이 자꾸 돈 달라고 보챕니다. 의사가 돈 없어 못 준다고 하니까 부인이 하는 소리가 "한 사람만 째면 되잖아!" 하더랍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소리 높여 대답합니다. "아, 쨀 사람이 있어야 째지!" 사실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판단을 해서 수술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돈을 목적으로 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무조건 "수술합시다" 한다면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지요. 또 변호사가 인권을 생각해서 변호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돈독만 올라 있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의뢰인은 어떻게 되든지 나는 수임료만 받아 챙기면 된다는 심정으로 일을 한다면 누가 존경하며 일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목사가 기업경영인 이상으로 돈에 욕심을 내고 교회를 돈 버는 목적으로 이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꼭 법률가나 의사나 성직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세상 모든 직업이 다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기 욕심에 빠져 그 목적에서 벗어나게 되면, 얼마든지 위험천만한 직업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직업 윤리를 강화하면 될까요? 직업 매뉴얼을 더 확실히 만들고 익히면 될까요? 우리가 시도해 볼 그 어떤 노력들은 물론 다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는 점은 자기 사명의 본질을 먼저 확인하고 그것에 충실하고 충성하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로 ‘로열티(loyalty)’를 가지고 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 일을 사랑하는 마음, 그 열정으로 일하려 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위험스러운 유혹과 함정을 피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 바로 창세기 마지막 부분의 주인공이었던 요셉입니다.


요셉은 참으로 성실한 모습으로 살았고 그의 성실함이 그의 삶 속에 충성됨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실함은 환경이나 사람에게 성실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먼저 성실하기 위해 그는 매사에 애쓰며 살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노출되었을 때 요셉은 자신의 주인 보디발에게 죄를 지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요셉은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없노라’ 고백하며 그 유혹의 자리를 뛰쳐 나갑니다. 이처럼 요셉은 하나님께 성실하기 위해 애쓰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노예로, 종으로 섬길 때나, 죄인으로 억울한 감옥살이를 할 때나,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나 한결 같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성실함 때문에 요셉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성실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쉽게 지칩니다. 그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성실하려 아등바등 몸부림치며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쉽게 바뀌지 않는 환경으로 인해 좌절하기 십상입니다. 성실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성실하기 위해 힘써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요셉처럼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도 성실할 수 있습니다. 성실함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성실함을 놓치지 않고 사는 길이 충성되게 사는 길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범사에 형통함으로 우리 삶 속에 충만이 역사하여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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