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701
- 23-04-23 08:40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매년 처세술에 관한 책이 매우 많이 출간됩니다. 조직이나 인간관계에서 다양한 상황과 형편을 마주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득이 되는지 저자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쓴 책들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큰 질문 하나만 기억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인가?’
사무엘하는 “사울이 죽은 후에”로 시작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온 이스라엘이 절망과 비통에 빠졌습니다. 한편 다윗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한 청년이 찢어진 옷에 머리에 흙을 뒤집어 쓰고 다윗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말렉 출신으로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해 왔다고 소개하며, 자신이 사울이 죽는 과정을 목격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사울이 고통 가운데 칼로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하여, 그에게 살 소망이 없음을 확인하고 그를 죽이고는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취해 가지고 왔노라고 하며 다윗에게 바칩니다. 그러나 사실 사울은 이방인의 손에 죽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자결했지요.(삼상31:4). 이는 분명한 거짓입니다. 그러나 이 아말렉 청년은 다윗의 원수인 사울을 자기가 죽였다고 하면 다윗에게 큰 상을 받으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은 곧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가 이렇게 기대한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위를 최우선으로 여겼던 다윗은 진심으로 이 소식에 애통해했습니다. 무엇보다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이 곧 자기 민족 이스라엘의 패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민족적 고통을 가슴 아파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사고가 팽배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한 채 지극히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과 공동체에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애통하는 자들과 함께 애통하고,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판단 기준이 자신의 유익, 안위, 안정이어서는 안됩니다.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에 관심을 기울이고 집중해야만 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집요하게 다윗을 죽이려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원수로 여기거나 그와 맞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 번씩이나 사울을 쉽게 죽일 기회가 있었고, 심지어 그렇게 한다면 광야의 도망자 생활을 끝내고 왕권을 차지할 수 있었는데도 다윗은 사울을 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자신이 대적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살았음에 대한 증거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평생 선택의 기로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면, 아무리 눈앞에 절호의 기회가 찾아와도 그것을 덥석 붙잡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누구보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어찌보면 가장 크게 기뻐해야 할 사람은 다윗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상황에서 옷을 찢고 슬피 울며 금식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진정으로 자기가 최선을 다해 섬겨야 할 왕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는 사울의 권위 때문이 아니라 그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주권을 최우선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고 전심으로 그것을 행하는 태도가 우리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분명 달라야 합니다. 삶의 모든 면에서 다르지만,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차이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깊이 배어 있어야 하는 삶의 원칙 중 하나는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 주권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기에 자신이 직면하게 되는 상황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인가’를 세심히 살피며 살았던 것입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손에 거머쥘 보상을 바라지 않고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두고 살았던 것입니다. 물론 그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실수하고 잘못된 행동을 범하기도 하였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하나님 주권 속에 자신이 놓여 있음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때로 깊은 회개의 자리로 까지도 내려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이었던가’를 생각하며 돌이키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살아가는 자는 늘 묻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인가?’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계속해서 물을 수 있는 질문이 되기 원합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과감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일을 위해 여러분의 발걸음을 옮겨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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