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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할 때 강함 주시는 하나님


약할 때 강함 주시는 하나님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약한 것들이 있습니다. 신체적 약함, 경제적 약함, 배우지 못한 지적인 약함,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서 살아야 하는 신분상의 약함 등등.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빨리 나의 약한 것들을 제거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즉시 강하게 해 주시기도 하시는데, 어떤 때는 약한 그대로 내버려두실 때가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안타깝게도 그의 약함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성경학자들은 그의 육체의 가시를 '안질', 또는 말라리아같은 '열병', 혹은 견디기 어려운 '두통'. 더 나아가서 '간질'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고통을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작정하여 간절히 세 번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인생을 위탁한 사람입니다. 적어도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누구보다도 복을 베풀어 주셔야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이런 사람에게는 부귀는 없다 하더라도 건강은 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에게 이 건강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왜 복음을 위해 사는 자신에게 이런 병이 있어야 하는지, 왜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남들에게 꺼내놓을 수 없는 이런 고통과 연약함과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먼저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그 가시가 옮겨지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세 번씩 그 고난이 옮겨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가 고난 당할 때 무엇보다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5:13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약5:1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고통 중에 주께 기도로 부르짖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응답하실까요? 첫째,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고통을 제거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병자들이 주께 부르짖자, 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저들을 그 병에서 고치시며 소원을 만족케 해 주셨습니다. 둘째, 고통은 그대로 두시지만 이 고통을 통해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바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바울은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를 해도 고통은 여전히 있지만, 그러나 그 어떤 위험이나 고난도 당당하게 참고 견딜 수 있는 은혜로 채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그 은혜로 약함을 완전히 이겨버리게 된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을 통해 새로운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저는 바울의 일생을 묵상하다 왜 그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해서 전도 여행을 하며 복음 전하는 삶을 살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복음 증거로 세워진 교회에 안주하며 오히려 그 교회를 크게 부흥시켜 더 큰 복음의 사역을 감당할 기반을 다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왜 그는 한 곳에 그다지 오래 정착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개척자의 삶을 살았을까요? 몇 가지의 가능성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그는 원래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었지요. 그런 열성분자가 하루 아침에 변절자가 되어 오히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앞장서게 되니 모든 유대인들의 공공의 적이 되고 맙니다. 실제를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조직이 만들어져 바울을 계속해서 추격했던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게 되면 그는 곳 유대인들의 표적이 되어 아마도 금방 누군가의 손에 죽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그의 육체적인 약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가지고 있던 질병의 가시가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키는 간질이었다면 오히려 그 질병으로 인해 그의 사역은 계속해서 방해를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설교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지는 모습을 성도들이 보면, 과연 그 교회가 지속할 수 있었을까요? 실제로 고린도교회의 반응을 보면, 바울의 외모를 가지고 그들이 비판하고 폄하하며 그래서 교회가 큰 분란에 휩싸이기도 하였던 것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바울의 이 연약함은 바울로 하여금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리를 움직여 가며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길을 계속해서 개척해 나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순간부터 이 기도를 멈추게 됩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 약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복음 증거의 길이 열리게 되고, 또 실제로 새로운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일을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약함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여전히 하나님의 능력은 변함없이 자신의 사역 가운데 계속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감사할 수 있었고, 그는 오히려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나의 약함 때문에 힘들어 하신다면 나의 약함을 통해 오히려 더욱 뚜렷이 보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인해 기뻐하시고 감사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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