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747
- 22-09-18 08:46
은혜
교회에 다니면서 참 자주, 그리고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은혜 받았습니다’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은혜가 무엇입니까?’라고 누가 물으면 좀처럼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기독교인 작가 ‘필립 얀시’의 책에 나오는 은혜의 스토리인 1990년 6월 Boston Globe 신문에 난 기사 하나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여자가 약혼자와 함께 보스턴 시내 하앗트 호텔에 가서 결혼식 피로연 음식을 맞췄다고 합니다. 책자를 꼼꼼히 살펴서 접시랑 그릇들을 고르고 그 다음 꽃 장식도 최고로 골랐습니다. 약혼하는 두 사람이 좀 고급스러운 걸 좋아해서 좋은 걸로 골랐더니 음식 값이 만 3천 불이 나왔습니다. 보증금을 달라 해서 절반 6천 5백 불 체크를 끊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남자가 딴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아직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남자와는 더 이상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여자는 화가 잔뜩 나서 결혼식과 피로연을 취소하기 위해 하얏트 호텔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예약을 취소하면서 보증금을 돌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호텔 측에서는 날짜가 임박해서 호텔 규정상 보증금 반환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천 3백 불까지는 돌려줄 수 있지만 나머지는 돌려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 중 하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나머지 보증금 5,200불을 떼이든지 아니면 그냥 피로연을 진행하든지. 남자에게 채인 이 여자는 고민을 했습니다. ‘5,200불 손해를 보고 말 것인가, 아니면 그냥 파티를 할 것인가.’ 놀랍게도 이 여인은 그냥 파티를 진행하는 걸로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혼 피로연이 아니라 노숙자 초청 파티였습니다. 이 여자는 10년 전 노숙자 보호소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때를 생각을 하면서 ‘이왕 쓰려고 했던 돈, 노숙자들을 초청해서 대접하자’라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90년 6월 보스턴 시내 하앗트 호텔에서 노숙자 파티가 열린 것입니다. 메뉴를 닭 요리로 바꾸고, 파티 제목을 “변심한 남자를 위하여" 이렇게 정하고 노숙자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래서 보스턴의 온갖 거지들이 다 모여서 하얏트 호텔 정장을 입은 웨이터들의 서비스를 받으면서 샴페인을 마시고, 웨딩 케익을 먹고, 호텔 밴드에 맞추어서 춤을 추었다는 것입니다.
노숙자들이 평생 처음 일류 호텔 식당에서 공짜로 먹고 마시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게 웬 떡이야? 이게 웬 은혠가?”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은혜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공짜로 누리는 선물을 뜻합니다. 내가 값을 치르지 않았음에도 값은 다른 사람이 치르고 내가 공짜로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바로 은혜입니다.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했고, 죄인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구원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23에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들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이어지는 그 다음에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합니다. 즉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값없이" 라는 단어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값없이’란 말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값없이’라 해서 값싼 은혜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혜는 싸구려가 아닙니다. 우리는 값없이 받았지만, 하나님은 값없이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비싼 값을 치르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채찍에 맞으시고 못에 박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는 죽음의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그러니 ‘값없이’는 값이 나가지 않는 싸구려가 아니라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장 귀한 값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값을 치르고서라도 우리에게 공짜로 주신 것이 바로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니 은혜일 수 밖에요. 이 은혜를 받았다면 은혜 받은 자답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계신지요? 받은 은혜를 싸구려 은혜 취급하며 살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 드리는 모습이 은혜에 감격해서, 감사해서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피곤하고 바쁘지만 정말 없는 시간 내서 한번 와 준 것처럼 생색내기에 급급하지는 않으신지요? 값없는 은혜 받은 자답게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