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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껍질의 사랑


빈 껍질의 사랑


우리 한국 사람들은 신혼부부가 아기자기하게 사랑하는 모습을 ‘깨가 쏟아진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깨를 추수하는 과정에서 사랑을 표현했던 것에 기인합니다. 참깨를 수확할 때는 참깨를 베어서 다발로 묶어 이 삼 일을 햇볕에 말리면 참깨 껍질이 쫙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 후에 참깨를 거꾸로 들어 올리면 벌어진 껍질 사이로 참깨들이 우수수 떨어진답니다. 참깨가 다 떨어지지 않으면 작대기를 가지고 참깨 다발을 툭툭 치면 남아 있는 참깨들이 다 떨어지고 빈 껍질만 남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고 하면 항상 깨가 쏟아지는 삶을 생각하지만 참깨가 다 쏟아지고 남는 빈 껍질의 모습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깨가 쏟아지는 것만을 사랑으로 생각하기에 왜 계속해서 깨가 쏟아지지 않느냐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깨가 쏟아지고 나면 빈 껍질만 남는 때가 오는데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빈 껍질을 보며 볼품이 없고 아름답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이때가 바로 만남의 과정에서 깨가 쏟아지는 애정의 시기를 지난 후에 맞게 되는 권태기입니다. 사람들은 이 단계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외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권태기의 단계가 찾아오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입니다.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들이 이 권태기의 단계를 이기지 못하고 끝없이 원망하고 다툽니다. 불평합니다. 어떤 이들을 헤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장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깨를 다 쏟아내고 볼품없이 남아 있는 빈 껍질의 모습으로 인해 아프고 힘들지만 잘 참고 인내하면 빈 껍질 속에서 더 깊은 사랑과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깨가 쏟아지는 단계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깨가 쏟아지는 과정을 만들기 위해 깨가 영글도록 품고 있었던 껍질의 수고와 애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됩니다. 진정으로 성숙한 만남은 깨가 쏟아지는 애정기의 단계가 아니라 깨를 다 쏟아내고 남아 있는 빈 껍질의 모습, 즉 권태기의 단계를 잘 극복할 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쫓을 때 언제나 깨가 쏟아지는 순간을 바라보며 쫓았습니다. 귀한 말씀이 선포되고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실 때 그 분의 옆에서 환호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쫓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을 한 방울 남김없이 다 쏟으시고 돌아가실 때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떠났습니다. 빈 껍질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서 자신들의 사랑의 한계와 권태기를 느낀 것입니다. 항상 애정기의 단계에서 머물기를 원했던 제자들에게서는 그 순간이 고통이었고 절망이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은 삼십 냥에 당신을 판 제자의 빈 껍질의 모습을 그대로 품으셨습니다. 자신을 저주하며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제자의 빈 껍질의 모습도 그대로 수용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찾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깨가 쏟아지는 애정기의 단계에서 예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삶 속에서 깨가 다 쏟아지고 빈 껍질만 남아 있을 때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병들고, 실패하고, 지친 모습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빈 껍질의 모습 그대로를 품으셨습니다. 빈 껍질의 모습을 쓰다듬어 주시며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빈 껍질조차도 사랑으로 품어주신 예수님의 성숙한 사랑 앞에 그래서 제자들과 모든 사람들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항상 깨가 쏟아지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깨를 다 쏟아내고 남은 빈 껍질의 모습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인가 채워져 있어서가 아니라 도리어 더 비워져 있기에 더 아름답고, 영향력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빈 껍질의 삶 같지만 깨를 다 쏟아 붓는 과정에서 겪는 아픔을 극복한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영향력과 향기는 쏟아지는 깨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품고 있었던 빈 껍질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들을 향해 자신의 것을 쏟아 부어버린 빈 껍질의 모습이지만 선한 믿음의 영향력으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로 더 커가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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