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살리는 길
- 작성자 : 웹섬김…
- 조회 : 752
- 22-07-17 08:52
모두를 살리는 길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여러 요인 중 하나는 오해와 갈등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고, 사도 바울과 성도들 사이에도 이런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바울에 대한 여러 오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자 그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가 바로 고린도후서입니다. 여러분, 당시 바울의 속이 얼마나 멍들었겠습니까? 교회를 설립하고, 일년 반 동안 심혈을 기울여 섬기고 키웠던 교회의 성도들로부터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너희는 나의 기쁨이다'라고 말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비난의 소리를 들었으니 바울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속이 터졌을 것입니다. 당장에라도 찾아가 자신의 사랑을 확인시키고 싶고, 자신의 사도직의 정당성을 당당히 증거하길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한 고린도 교인들의 오해가 더 심해질지도 모르는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에게 가기로 한 계획을 연기하였습니다. 그가 왜 그리하였습니까? 그가 무책임한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근심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방문 계획을 연기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잘 알았습니다. 전체의 상황을 파악한 것은 물론 성도들의 상황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해가 그로 하여금 지금은 갈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 바울이 볼 때 그들은 아직 바울의 직접적인 책망이나 권면을 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사도로서 마땅히 그들에게 주님의 교훈을 가르치고 바른 신앙을 갖도록 해야 했지만, 지금 당장은 그들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했으며, 그로 인해 더 큰 오해를 낳을 부담을 무릅쓰고서라도 방문 계획을 미룬 것입니다. 실로 바울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를 돌아봅시다. 여러분은 지금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고 그를 위해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형제를 위해서라면 불이익도 감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예수를 믿고 용납과 용서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실제적인 삶 속에서 이것을 적용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교회는 회사가 아니며, 성도와 성도가 계급에 따라 나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회사처럼 사무적으로 변해 버린 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일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고, 명령하고, 성도의 잘못에 대해 칼같이 단호하게 책망하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권면과 가르침으로 성도가 바르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다른 성도의 한마디 말로 인해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는 성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가 되어야 할 성도가 '저 성도랑 같이 신앙 생활 못하겠어!' 하며 정든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인류의 평화와 나라의 복지를 의논하다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기에 떠나는 것입니까? 아니면 기독교 교리에 대한 심각한 견해 차이 때문입니까? 이렇게 큰 이유로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상대의 말에 상처를 받아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는 나의 신앙을 도우려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왠지 그 말이 너무도 야속하게 들립니다. 또 바른 말인 것을 알지만, 그것에 동의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상황이 그것을 받아들일 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자라면 어떤 때, 누구의 말이든 다 수긍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성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상황에 의해 쉽게 감정이 좌우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 모습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어떤 성도를 권면할 때는 먼저 상대의 상황을 깊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가 권면을 받을 만한지, 아니면 좀더 기다려야 하는지를 깊게 숙고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의 권면은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정작 권면하는 목적인 상대의 회개와 변화는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의 권면이 상대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배려한 것과 같은 배려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당장 고린도를 방문하고 싶었지만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방문 대신 편지하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바울은 디도로부터 고린도 교회의 상황이 매우 호전되었다는 보고를 듣게 됩니다(고후 7:6-8). 여러분, 우리에게도 서로를 향한 권면과 충고에 이러한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상대의 상황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충고와 권면에 앞서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는 충고는 결국 모두가 다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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