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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발걸음과 시선


주님의 발걸음과 시선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게 됩니다(요9:1). 우연인 것 같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으시고 항상 나아가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것이 성전이든, 길바닥이든 예수님은 어디든 하나님의 뜻을 위해,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길 가의 단 한 사람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바라보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바쁘셔도 ‘하나님의 뜻’에 모든 초점을 맞추며 사셨기에 그 날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준비되고 예비된 영혼을 만나시기 위해 쉬지 않고 길로 나아가셨습니다. 바로 전까지 자신을 고발하려는 무리들과 엄청난 논쟁을 벌인 뒤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논쟁에 감정이 상하지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으시고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의 시선과 사람의 말과 사람의 행동에 너무 민감하여 내 감정이 쉽게 흔들리고 그것에 의해 판단과 결정의 근거를 삼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인간의 성품을 가지고 계셨기에 다를 리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이 계속해서 쉬지 않고 나아가실 수 있으셨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항상 바라보시며 사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고 그것에 집중하며 살고 있는지 오늘의 나의 삶을 돌아보며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기분,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쉽게 흔들리지는 않았는지요? 그렇다면 이젠 하나님의 뜻을 내 삶 속에서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매 순간은 아니어도 가끔씩 생각을 멈추고 그 순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는 여러분의 모습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어떻게 그날 그 수많은 사람 중에 눈이 먼 맹인된 그 한 사람이 예수님의 눈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예수님의 눈에는 수많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들어와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지요? 저의 경우, 목회자로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소수의 몇 몇 사람만 눈에 들어와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너무 많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저의 아이들이 옆에서 하는 이야기조차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눈과 나의 눈의 차이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렴풋이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관심’일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일 것입니다. 주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도 사람을 보아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음과 눈을 가질 수 있기 원한다면,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내 필요에 의한 관심과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영혼들에 대한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깨달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주님처럼 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바로 주를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은 결코 예수님을 볼 수 없는 환경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예수님을 결코 못 만나는 환경에 처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가 볼 수는 없지만 예수님은 그를 눈여겨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말의 맹인의 입장에서처럼 종종 우리의 환경을 탓하곤 합니다. 내가 경험하는 불행의 순간도 내가 처한 환경 탓이라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그날의 맹인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그런 핑계로 따지면 그날의 그 맹인은 결코 주님을 만날 수도, 아니 결코 만날 수 없는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환경의 핑계를 댄다면 그는 평생 자신의 불행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구원자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가 겪고 있던 그 환경이 오히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준 통로가 된 것입니다. 결국 환경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왜요? 주님은 항상 환경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아주 최악의 환경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눈여겨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문제는 하나씩 해결 되어 집니다. 그 최악의 환경이 오히려 주님이 눈여겨 보실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의 환경 탓하지 마시고, 오늘 내게 부지런히 찾아오시는 주님, 오늘 나를 눈여겨 보시는 주님을 기대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발걸음이면 족합니다. 그 분의 눈길 한번이면 충분합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발걸음, 나를 향한 주님의 시선으로 인하여 임하는 하나님의 풍성하고도 크신 은혜 안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오늘을 힘내어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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